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와히드 왕조 (문단 편집) == 기원 및 형성 == 무와히드 왕조의 기원은 [[무라비트 왕조]]와 마찬가지로 광신적인 종교 조직이었다. 아틀라스 산맥 주변 지역의 [[베르베르]] 부족집단인 마스무다족 출신의 이븐 투마르트가 그 창시자였는데, 젊은 나이에 [[코르도바(스페인)|코르도바]], [[메카]], [[바그다드]] 등을 거치며 신학을 공부한 그는 주위 [[무슬림]]들의 종교적 나태함에 분노했다. 28살의 나이에 [[모로코]]로 돌아온 이븐 투마르트는 매우 엄격한 종교적 강령을 만들었는데, (한발리 파와 유사하게) [[꾸란]]에서 금지한 모든 것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금지하는 한편 신의 다양한 성격을 모두 부정하고 오직 한 가지의 신격만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알 무와히둔, 즉 "신의 유일성을 믿는 자들"(Unitarians/Monotheists)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꼴통스러운~~ 엄격한 강령을 만든 이븐 투마르트는 1118년 마흐디(구세주)를 자처하고, 여러 도시들을 돌며 설교를 하고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설교의 내용은 지배층인 무라비트 왕조 세력의 종교적 나태함에 대한 비난과 자신의 교조적인 강령에 따른 엄격한 종교적 개혁을 실행할 것 등이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자 당연히 무라비트 왕조 측의 탄압이 뒤따랐고, 이에 이븐 투마르트는 1120년경에 동족인 마스무다 집단의 본거지 아틀라스 산맥의 도시 틴멜(Tinmel)에 자리를 잡았다. 1130년대 전까지 무와히드 세력은 아틀라스 산맥에 자리 잡아 무라비트 왕조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는것에 그쳤으나, 1130년대 초부터 무와히드 왕조는 마침내 산맥 너머에서의 첫 번째 대규모 공격을 위해 산맥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기독교 세력에 의해 알 안달루스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무라비트 왕조]]에게 그것은 재앙이었다. 압드 알 무민은 무라비트 왕조의 병력을 쓸어버리고, 마라케시까지 그들을 추격하여 마라케시를 포위하였다. 1130년 4월에 무와히드 왕조는 알모하이라 전투에서 무라비트 왕조의 병력을 참패시켰다. 무라비트 왕조의 군대는 철저하게 대패했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무라비트 왕조]]의 고위 관료들이 절반 이상 전사했고, 생존자들은 겨우 겨우 돌아갈수 있었다. 이븐 투마르트는 1130년 8월에 사망하였다. 무와히드 왕조가 지도자의 죽음 이후에도 즉각적으로 붕괴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븐 투마르트가 틴멜에서 쌓아올린 세심한 조직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후 잠깐의 후계다툼 이후 알제리 출신의 제나타 베르베르인이였던 압드 알 무민이 후계자가 되었다. 압드 알 무민은 외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무와히드 왕조]]를 다시 단합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